다시 쓰는 에세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했을까?


가장 인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가 언제일까?


나는 대학교 3학년 2학기이었다. 그전까지는 내 인생의 기로는 '심장 재활'이라는 곳에 꽂혀 있었고, 수많은  세미나와 워크샵에 참여하고, 친한 후배 영준이와 함께 연수도 듣지 않은 채 2등과 3등까지 하고, 누가 봐도 거기에만 매달려있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병원에 일을 한다고 하여서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럼 나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쉽게 내리지 못하는 나의 생각은 언제나 계속 이어졌고, 그러한 고민들로 자취방 테이블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왔다. 체육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은 했지만 앉아서 공부하는 체질이 아니었던 나는 행위를 하며, 쌓았던 경험이 더욱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팔 씨름 대회에 나가 3등까지 했다. 그리 힘이 쌔지 않았지만 나만의 순간적인 전략으로 이긴 경우가 많았다. 그때 나는 사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는 구나 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때 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볼 때 언제나 '그런 사람이구나' 라고 정의를 내렸던 듯하다. 그리고 어렸을 때 부터 축구를 하며, 공을 받았을 경우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조금 더 유리하고 확실한 친구에게 패스를 했고, 경기 중에서는 페어 플레이를 추구 했고, 결과에 승복 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 했고,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으로 쌓아 갔었다. 나에게 운동과 스포츠는 하나의 마치 책같이 인생을 사는데, 아주 좋은 토양이 되었고, 그렇게 나라는 나라는 인간에서 많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병원에서 일을? 내가 일을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체육대학교 건강 관리 학과에 졸업하더라도 우리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었으며, 연세대학병원에서는 운동 처방에 관련된 업무는 물리 치료사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 길을 택하게 된 것도 그리고 다른 길을 택하게 된 계기도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부터 휘트니스 운동을 많이 해서 지금의 내 나이 때 아버지 사진을 보면 근육질의 몸으로 인기가 아주 많았을 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내 배가 부끄러울 정도로 근육질의 모습을 했고, 그 후 운동을 줄이다 내가 군복무 시절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내 나이가 22~3살이었고, 아버지는 50대 초반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나 건강하고, 몸짱이었는데, 운동을 줄이면서 몸이 점점 왜소해지고,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건강 해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대부분 사망으로 이르는 심근경색이 왔지만 그전에 운동을 했었던 것들로 인해서 인지 아버지는 다행히 운전을 해서 병원에 가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그 후로 나는 효자였는지 심장 재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학기 중에 교과목도 있었고, 근골격계 질환보다 나의 취향에 더더욱 잘 맞았기에 재미있었다. 그렇게 그런 꿈을 꾸다 한국에서는 아직 심장 재활이 미비하고, 발달이 되지 않아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Mayo clinic 등 여러 기관을 통해 문의를 해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스포츠 의학은 의료 영역이라 시민권이 없는 나로서는 택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고 싶어 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아빠, 나 해외에서 공부 더 하고 싶어요."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냐?"

"아니요. 그건 아닌거 같아요."

 "그럼 나가서 무얼 하냐."

"알겠어요."


이러한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바로 접었다.

그리고 현실과 견주어 보았을 때 내가 그리 행복 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행복이라는 것에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각자의 기준도 모두 다를 테고, 느끼는 방식조차도 다를 것이다. 나에게 행복은 온전한 나의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다 가족에게 무슨일이 생겼는데, 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가 생겨, 내가 아이를 마중 나가거나 할 때 내 마음대로 시간을 할애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이 가능한 그것이 그 당시 나에게는 행복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내 인생에서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회사에 들어간다면 더더욱 못할 것이라 판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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