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한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해석 1/3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을 내맘대로 해석을 했으니 주의 바랍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났던 것은 2014년 9월 쯤 이었다. 킨미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라고 나에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우리가 3층집 오픈 파티 할 때 그의 그림을 이름없는 건물에 놀러 오는 분들 대상으로 함께 완성을 했다. 


두번째, 그의 그림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그것은 이전에 멤버였던 수향씨의 작품인데, 사진이지만 수채화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녀의 사진 중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는 사진인데, 마치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같이 강렬한 색감과 역동성이 보였다.


세번째, 그를 자세히 알게 된 계기는 김작가였다. 김작가와 작년 11월에 런던에 있는 영국작가만 전시하고 있는 테이트 브리튼을 찾아가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갔지만 A Bigger Splash 밖에 만날 수 없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에서 폭풍의 예술가, 윌리엄 터너를 기리는 상인 터너 Prize를 수상하고, 다수 작품을 테이트 재단에서 갖고 있는 영국이 아주 사랑하는 작가를 너머 전세계가 사랑하는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선 SSG CF를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영감을 받고 만든듯한? 잘 모르는 분도 있겠지만 이미 익숙한 작가이다. 


나도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이번 서울 나들이에서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그의 수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하여, 손꼽고 기다렸다. 


입장 전


먼저 일정이 빠듯한 날이었기에 일찍 부터 미술관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고, 줄서기 까지 하였다. 이미 소문난 맛집이었던 데이비드 호크니를 영접 하러 온 이들이 많았다. 눈치를 보다 바로 줄을 섰고,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오픈 전에 기다리고 있던 영국인들과 비오는 날에도 불구하고 퐁피두 미술관 오픈 전에 길게 늘어섰던 장면이 떠올랐다. 


 

제 1관


전시 장은 1층이 아닌 2층 부터 이어졌다. 한 10번째에 들어갔고,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스스로 해석을 하고 싶어 해설은 듣지 않고, 작품에 집중 했다. 약간의 가이드가 필요 했기에 작품 아래에 적혀있는 텍스트, 전체적인 기획 의도를 정독 하였다. 워낙 많은 인파가 있었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작품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호크니typhoo tea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그림>,1961, 데이비드 호크니


맨 처음 만나는 작품은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이다. 이 그림 앞에서 굉장히 앞에 오래 있었다. 1961년이면 1937년생 호크니가 24살에 만든 작품이다. 내가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것은


1. 프랜시스 베이컨의 드로잉 모습이 보임

2. 입체적임을 평면적으로 풀어냄.

3. 피카소와 달리 공간적 구성을 캔버스 틀로 나타냄.


분명 피카소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영향을 받았을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입체적인 인간을 평면적인 캔버스에 담으려 다분히 노력했던 피카소와 조금 다르지만 3D공간을 먼저 평면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서 2D를 풀어내는 복합적인 그림임을 느꼈다. 베이컨의 그림은 그냥 보기에는 기괴하고, 괴기스럽지만 우리의 기억과 내면은 항상 그의 그림처럼 왜곡되어있다. 그러한 그림이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기작에서도 보인 것이다. 자신이 영감을 받았던 많은 예술가를 자신의 그림에 도입을 하면서 실험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david hockney the second marriag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두번쨰 결혼>,1963, 데이비드 호크니


그러한 모습은 63년 작 두번째 결혼에서 나타난다. 공간적 구성을 입체적으로 나타내며 마치 무대인 마냥 3D공간에서 2D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랑, 신부. 피카소는 입체적인 인물을 평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기작들은 3D공간을 입체적으로, 그 속에 있는 인물은 평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1964년 부터 날씨가 완전 다른 미국 서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나도 영국을 최근에 가보았지만 Chill 함이 뼛속까지 느껴지고, 맑은 날보다 어두운 날이 많았다. 지금과 달리  2차 산업이 국가적 산업이었다. 1952년에 있었던 그레이트 스모그 사건으로 사망자만 1만 2천명에 다다랐고, 영국인들에게 자연은 그리 중요한 요소로 인식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서부는 어떤가?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자연 중심적인 도시이고, 미국의 땅이 넓다 보니 아무리 도시가 발달하더라도 자연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눈부시 햇살과 미국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작품을 이어 나갔다.



관련 이미지

<더 큰 첨벙>, 1967,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가 미국 서부에 머물 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관심이 자연으로 갔다는 것이다. 물, 비 등 가장 역동적인 자연을 담으려 부단히 애를 쓴 듯 하다.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더 큰 첨벙을 볼때 난 이렇게 해석 했다. 


1. 하나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2. 자연의 역동적임을 표현하려 했다.


 누군가가 수영장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다이빙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이 튀었다. 단순한 하나의 작품이지만 누군가는 이 그림을 보며 유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 작품에서는 보이는 것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지만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그 역동적임을 담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스프링 쿨러, 비 등 여러 자연과 관련된 작품으로 이어진다. 자연의 역동적임은 영국 대표 작가 윌리엄 터너 작품에서 보면 볼 수 있는데,


윌리엄 터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A storm>, 1823, 윌리엄 터너


같은 자연의 역동성을 표현 했다. 하지만 마치 사진처럼 멈춰 있는 느낌을 주는 윌리엄 터너와 달리 아주 절제된 색과 간결함으로 더욱더 역동적이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그는 작은 표현으로 스프링 쿨러와 레인등 여러 자연의 역동적임을 캔버스로 자연스레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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