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글쓰기

B

B는 머리를 감다 문득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머리를 감으며, 샤워를 하며 생각이 스치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었지만 B는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데?' 

그녀는 그 어떤 메모도 할 수 없는 순간에 항상 유레카를 외치는 자신에게 가끔 짜증이 났지만 어떡하랴. 적을 때까지 잊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머리를 헹구며 지금 헹구는 거품이 샴푸였는지 린스였는지 헷갈릴 정도로 오로지 그 한 문장에만 집중했다. 

씻는 일보다 문장을 잊지 않는 일에 집중하며 욕실을 나와 B가 향한 곳은 책상이 아니라 화장대 앞이었다. 씻고 나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스킨, 로션을 바르는 일로 정해져 있었다. 얼굴에 스킨, 로션을 바르는 일은 깨끗한 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전에 다른 물건을 만진다면 씻고 나온 깨끗한 손이 오염된다고 믿는 B였다. 물론 욕실에서 나오기 무섭게 바싹 마르며 뻑뻑하게 땅기는 건조한 피부도 한몫을 했다. 

촉촉하게 보습을 끝내고 만족하고 나서야 B는 수첩에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니는 암시롱 말거라.' 

글로 적힌 문장을 보니 막연함이 서서히 어떤 그림으로 바뀌며 B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장을 적음과 동시에 캐릭터의 설정이나 기본으로 심어둘 배경의 뻔한 클리셰들을 떠올렸다. 

-사투리를 어울리게 쓸만한 캐릭터는 역시 할머니겠지? 이건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야. 그럼 할머니랑 주인공이 같이 살아야겠군. 할머니랑 같이 산다면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인게 딱이지. 아버지는 알콜중독에 엄마는 도망갔겠군. 알콜중독자의 집이라. 부엌에 난 창문이 작아야겠다. 거기선 빛이 으스럼하게 들어오고 그 빛은 싱크대에 그늘지는거지. 그늘 밑으로는 술병이 나뒹굴어야겠지? 좋아. 그럼 아버지는 이런 캐릭터겠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보자.. 주인공 시점으로 써볼까? 주인공 '나'는 이렇고 저렇고 할머니가 어떤 상황에서 대사를... 

바닥엔 금방 물기를 털어낸 머리칼에서 떨어진 머리카락들이 뒹군다. 머리칼을 털며 튕겨져 나간 물방울들이 거울 위로 자글자글하다. 

B는 빠른 속도로 수첩의 페이지를 채워간다. 이전엔 생각을 다 정리한 후에 바로 글로 쓰기 시작했는데 캐릭터가 약해보이거나 중심으로 잡고 싶은 메세지가 변질되기 일쑤라 흐름을 잘 잃곤 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캐릭터뿐만 아니라 극적 장치, 배경, 심지어 대사나 문장까지도 중구난방으로 적은 후 정리하는 것이 그녀 자신에게도 쓰기 재미있는 글이 나온다는걸 깨닳은 B였다. 순식간에 작은 수첩의 서너페이지가 날려쓴 문장과 단어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B는 확신했다. 

'오랜만에 '써지는' 글이 되겠군.'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댓글(3)

  • jangho10****
    13 Apr 2019
    가연씨 스탈 도저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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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이
    12 Apr 2019
    맞아요. 암씨롱 말그라를 쭈욱 이어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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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아무개
    12 Apr 2019
    소설을 쓰는 자기의 모습을 또 소설처럼 풀어쓴 독특한 발상에 아주 재미난 글이네요. 연작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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