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의 쓰다.듬다

흰머리

단상(斷想) – 흰머리


퇴근을 하고, 하루의 피곤과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그리고 요즘 더욱 창궐하는 미세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다. 

늘상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문득 거울을 본다. 

하루의 피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얼굴....

그래도 수고했다, 대견히 바라본다.

오래간만에 이리저리 훑어보기도 한다. 

주름은 얼마나 늘었지? 여드름은? 잡티들은...

그리고 그날따라 문득 오른쪽 귀밑머리가 신경 쓰인다.

조명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거울에 비춰진 것이다. 

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그것.... 아직 대부분이 검은색인 그곳에서 한가닥 빛나는 그것.

흰머리카락이다. 

어느 순간 귀밑머리에도 흰머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는 나이가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 세월이 무상하게 지나간 것 같았다. 

서글픈 느낌도 들었다.

아~~!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서럽고 원통하지는 않다.  

내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내일이 없다면야 뭐 굳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태어난 이후부터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노화의 길을 걸어간다. 그걸 굳이 슬퍼할 이유는 없다. 

영원한 젊음은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많은 것들 중에 태어남과 죽음이 가장 큰 것이다. 그 사이 나타나는 노화는 공짜 선물에 대한 당연한 대가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스물의 잔치가 끝났다.

서른의 잔치도 끝났다.

마흔의 익어가는 늦여름을 보고 있는 중이다. 

곧이어 쉰과 예순의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쉬어갈 수 있는 겨울의 나이를 만날 것이며...

다시 봄은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40대의 어느 언저리에서 흰머리카락을 세어 보기도 하고, 과거보다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들을 만져보며, 주름을 더듬어 본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내 모습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기억의 저편에서 더 이상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과거를 추억하게 된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나의 그 옛날을 더듬어 본다.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을 젊은 부모님을...

흰머리카락을 뽑아달라시며 내 허벅지를 베고 누우면, 귀찮다고 거절하다가, 한가닥에 십원이라는 말에 슬며시 작은 손으로 아버지의 혹은 어머니의 검은색 머리카락 틈새를 헤집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숨바꼭질 하듯 숨어 있는 흰머리카락을 찾아낸다. 족집게를 들이밀어 힘을 주어 쏘옥 뽑아내면 버티던 녀석도 때로는 모근과 함께, 때로는 힘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잘못한 죄인을 가려내기라도 하듯.

모근이 함께 딸려나온 녀석을 거울에 하나씩 붙여둔다.

한 개당 십원씩.

그렇게 열개 정도를 뽑아내고 100원을 받는다. 

왜 이렇게 흰머리가 많아? 라고 철없이 물어보면...

니들 먹여 살리느라 그래....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무심히 의미조차 두지 않고, 미안한 마음도 없이 받아든 100원에만 기쁨을 준다.

그 시절에는 용돈 벌이로만 생각한 흰머리 뽑기.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한번씩의 경험은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고, 나에게도 흰머리카락들이 생겨나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그때의 그 말씀들이....

아버지의 흰머리는, 어머니의 흰머리는 나를 벌어먹여 살리기 위한 노고의 흔적이라는 것을.

잠시 용돈 벌이로 생각하고, 나름 저녁밥을 드시고 잠시 쉴라치면.

아이는 기회를 포착한 듯 득달같이 달려들어 흰머리를 뽑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기위해 별말씀 없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늘어나는 흰머리가 있는 고단한 머리를 자식의 허벅지에 누인다.

하루의 노곤함은 어느새 잠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그렇게 삶의 고단함을 지워가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는 부모님의 마음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그것도 문득 내 모습을 보면서 느껴지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문득 뒤돌아보면 이미 검은머리카락보다 더 많아진 흰머리를... 이제는 뽑아서는 안되는 흰머리를 가진 부모님이 주름진 세월의 미소와 함께 서 계신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나의 용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부모님이었다는 것을...

긴 세월이 지나서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처럼, 어머니의 나이처럼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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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az
    1 Apr 2019
    저도 흰머리하나에 +십원 검은머리 하나에 -백원하면서 아버지 머리카락 뽑아드리면서 실수로 검은 머리 뽑으면 몰래 흘려내고 흰머리만 거울에 붙이던 기억이 있어요 ㅎㅎ 역시나 용돈벌이로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고 잊었는데 공공이님 덕분에 기억나고 부모님 흰머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네요 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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