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글쓰기

대재앙 생존자의 일기

2059년 3월 17일(월)


아주 먼 미래의 일이거나, 혹은 영원하리라 믿었던 인류의 종말.

그것은 의외로 가까웠다.


10여개의 기둥이 떠받히고 있는 유리벽.

그 속 넓은 방안 의자에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손놀림을 하고 있는 60대 노인이 한명 앉아 있다.

노인은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는 중이다.

그의 책상 위에는 스마트 폰이 여러 대 놓여 있다. 그중 한대는 노인의 주름진 얼굴을 찍고 있는 중이다. 

나머지 스마트 폰들은 고장이 났는지? 아니면 단순히 충전중인지 화면이 꺼진채 있다. 

물론 간간히 노인의 손길은 다른 스마트폰으로 향해 화면이 밝아지기도 해서, 고장난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인의 두 눈은 퀭하고, 얼굴은 초췌하게 보였다. 입술은 바짝 말라서 갈라져 있고, 군데군데 피가 말라 붙어 있다. 

노인은 바짝 마른 입술을 열었다. 

마치 콩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떡을 먹은 것처럼 칼칼한 목소리가 노인의 마르고 주름 가득한 목에서 나와 스마트폰의 마이크로 전달된다. 


생존 일기 – 대재앙 이후 10년 2개월 5일째 되는 날.


오늘이 마지막 영상기록이 될 것 같다.

지금 나의 몸은 죽음의 문 앞에 있기 때문이다. 

곧 문이 열리면 나는 그곳으로 넘어가야 한다. 

어떤 외부 조건의 변화에도 죽음은 나를 데려 갈 것이다.

살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멍하니 죽음만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영상을 남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기약하지 못할 것이고, 기약한다해도 의미가 없지만, 만약 이 영상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나의 부탁을 들어주길 바란다.

반드시 생존하기를......

 

오늘 식량을 구하러 호텔 밖을 다녀왔다. 

근처에 있는 마트나 혹은 식료품점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들은 나로 인해 이미 바닥이 난지 오래다. 그래서 먼 곳의 마트에서 식량을 구하고 돌아왔다. 

식량이라고 해 봐야 남은 것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뿐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들어 많이 들고 오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오늘 좀 무리를 해서 최대한 많이 가지고 돌아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완벽하게 생존하기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주변을 관찰하고 생존자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아래층의 각 방 냉장고에는 식량들을 넣어두었다. 

만약 생존자들이 내가 보내는 신호를 보고 이 곳으로 온다면 그들을 위한 몫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최대한 많이.


돌아오는 길에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을 힘겹게 올려 보았다. 

15층의 건물 꼭대기가 아득하게 멀어 보인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말이다.  

미세먼지 덕분에 시야가 좁아진 것도 있지만, 이제 남아있는 기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은 힘들을 짜내 오늘 얻은 식량들을 15층 꼭대기 내가 머무는 방으로 겨우 옮겨 두었다. 

나는 끓여서 식혀둔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그제서야 겨우 눈이 떠지고, 기력이 조금 돌아와서, 저녁을 맞이할 수 있었다.  


2048년에 발생한 대재앙으로 당시 90%가 넘는 인간이 멸종되었다. 

당시의 대재앙은 지구상의 대부분의 생물을 멸종시키고 말았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심지어 조류와 어류까지도. 

한번 무너진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들만 텅비어버린채, 덩그러니 지구상에 남게 된 것이다. 

이후 식량은 더 이상 생산되지 못했다.

78억명의 인류는 7천만명 정도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그들도 점점 생명을 다하고 있었고,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더 이상 새 생명들은 태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저주였다. 

그리고 재앙이었다. 

아니 인류가 지은 죄값이었다. 

최근 3개월간 지내면서 내린 결론은 대한민국에는 더이상 생존자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결론을 내린 이유는 생존자들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시도한 나의 노력의 결과 때문이다. 

뭐 생존자들이 없는 덕분에 나는 생존을 위한 식량을 구하기는 수월했다. 

물론 지난 10여년 동안에 생존자가 있었다 해도 식량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오래된 통조림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집에서, 식료품점에서, 마트에서, 백화점 지하 수퍼에서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먼 곳의 도시로 다녀올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은 이미 동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한때 5성급 럭셔리 호텔로 불리는 곳에 머물고 있다. 한층 전체가 1개의 객실인 15층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곳을 고르게 된 것은 호텔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창밖을 보고 도시에 생존자가 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빌딩들이 듬성듬성 있지만, 호텔과 가까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시야 확보에 용이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불을 켜서 생존자가 이 곳으로 찾아와주기를 바랐고, 때로는 불을 끄고 사방에 불이 켜져 있는 곳을 발견하려 망원경을 들기도 했다. 방안 사방으로 마트에서 가지고 온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전구를 달아 외부에서 쉽게 발견해주기를 기대하고 밤이면 밤마다 반짝였다. 마치 1년 365일이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하지만 세상을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는 현저하게 짧아졌다.

어떻게든 생존자들을 찾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도 2주 전부터 중단하고 말았다.

망원경을 들고 사방을 오랫동안 살펴보는 일이 버거워 질 정도로 몸이 쇠약해 졌기 때문이다. 이 곳에 머문지도 6개월.

그 어떤 생존자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  

처음 2주 동안 호텔 북쪽에 있는 작은 빌딩에서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 를 반복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지만, 생존자는 내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사망한 후였다. 젊은 남자였는데, 먹지 못했는지 심하게 영양이 결핍되어 있었고, 그가 머물던 곳 사방은 그가 토해낸 피가 가득했었다. 어딜가도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와 헬멧까지 쓰고 있었기에 감염되지는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변종폐결핵 보균자였기 때문에 감염 여부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망원경을 들고 사방을 살펴보는 일을 중단한 2주 전부터는 기침이 심해졌고, 그로 인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까지 살아있긴 하지만, 날이 밝으면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은 안도감 보다는 불안감만 준다. 

‘아무도 없는 세상 나혼자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은 점점 나이가 드는 나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서울의 하늘은 뿌옇다.  

짙은 먼지구름 아래 뿌연 안개 같은 먼지가 가득하다.

검은색 비닐 방호복을 입고 나갔다 오면 하얀, 혹은 회색의 먼지들이 온 몸에 붙어 있다.  

공기 중에 가득한 먼지들은 대지에 가라앉아 내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은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치 눈길을 걸은 것처럼. 그리고 다음날 보면 그 자리는 먼지로 다시 메꿔져 있었다. 누군가 내가 없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침입한 적이 있다면 금방 표시기 날 정도였다.    

대기 중에 먼지가 분포하면서 해를 가리고, 대기를 정체 시킨지 20여년이 넘었다. 그 정체된 공기는 눅진하고 무겁다. 게다가 공기 속에도 미세먼지가 가득 붙어 있다. 그리고 그 미세먼지 속에 각종 오염물질들, 혹은 바이러스들이 붙어서 결국 인간과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변종폐결핵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변종폐결핵 바이러스는 그동안 인류가 발견하거나 발명해 놓은 약들이나 백신들이 아무런 소용없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결국 서울은 아니 전 세계는 안개 낀 뿌연 하늘 아래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지금의 나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유령의 도시가 되었다. 한때 인구 천만 이상이 살고 있는 북적거리던 도시는 먼지가 내려앉은 유골들만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도시의 밤을 밝히던 화려한 네온사인도, 거리의 가로등 불빛도 대부분 꺼진지 오래가 되었다.

다행이 내가 거주하는 호텔 건물과 그 주변은 전기가 나가지 않았고, 미세먼지를 일으키지 않는 청정연료를 사용하는 전기자동차가 있어서 이동이 어렵지도 않았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발전소가 주인 없는 빈 건물의 네온사인을 켜주고, 가로등을 밝혀주기도 하고, 내가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그 빛들도 서서히 줄어가고 있다. 빈 건물에 자동으로 켜지는 네온사인 불빛을 보며, 초기에는 부지런히 생존자를 찾아다녔던 기억도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다 보니 곳곳에 무성하게 풀이 잠시 자라다, 햇볕을 받지 못해 말라 비틀어졌다. 그리고 공원이나 거리에 있던, 그리고 숲을 이루고 산을 이루던 곳은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나무들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을 뿐이다. 나무들은 무성한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메말라 죽어 버린지 오래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 내 몸이 스치기라도 하면 나뭇가지는 그대로 먼지처럼 바스라져 버린다. 

새소리, 바람소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들이 사라지고 적막하고 고요한 지구 위.

고즈넉하기도 하지만, 마치 물속에 혼자 있는 느낌이다.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에서처럼 적막하고 고요한 지구의 도시에 그나마 동물들은 뛰어다니고, 밤이 되면 죽었던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는 그런 도시라도 기대했건만, 변종폐결핵 바이러스는 영화에서처럼 좀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만 곳곳에 널려 있는 인간의 유골만 있을 뿐. 


한참을 달려 도착한 마트의 창고와 매대에서 먹을만 한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유통기한은 훨씬 지났지만... 어쩔 수 없다. 먹어야 그나마 목숨을 유지할 수 때문이다.  

나는 널브러져 있는 카트 하나를 일으켜 세웠다. 녹이 슬어 꺼걱 거리는 카트에 필요한 물건들과 식량들을 닥치는 대로 실어 차의 짐칸으로 옮겼다. 

과거 같았으면 30여분이면 다 처리할 일을 쉬다가, 옮기다가를 서너 번 반복하는 동안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쩌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 생존의 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2주전부터 기침 빈도가 잦아지더니, 1주일 전에는 한번 기침을 하면 피가 올라왔다.

그리고 기침 시간도 길었다.

작은 갈퀴로 속을 긁어내려는 듯한 통증과 함께 나타나는 마른기침. 그러다 컥 소리와 함께 울컥 피가 목구멍을 타고 오르면.... 솔직히 두려움 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죽음이 임박했구나..... 라는 생각 때문에.

힘이 너무 들어 남아 있는 통조림들을 그냥 놔두고 주차장으로 몸을 옮겨갔다. 마른 풀이 부서져 연기처럼 사라졌다. 

차를 다시 타고 시동을 걸었다. 시계를 보니 그때가 오후 4시정도였다. 짙은 먼지구름으로 인해 하늘은 어두웠다. 마치 비라도 내릴 것처럼.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은지 20여년이 지났다. 

시동을 건 차의 핸들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마트의 다른 입구가 잠시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그곳을 지나치는데, 입구 안쪽에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아니 순간 그 사람에게서 움직임이 보인 것 같았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포켓에 있는 총을 꺼내 들었다. 

이 총은 이미 오래전에 경찰서에서 꺼내 온 것이다. 

사람이 그립고, 사람과 만나려고 애쓰다가 막상 누군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조심스러워진다. 또 총을 활용하는 모습에서..... 과연 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조심스럽게 총을 겨누며 가까이 다가갔다. 역시 나처럼 방호복을 입고 엎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등에는 산소통을 메고 있었다. 

산소통을 살펴보자, 게이지가 0으로 되어 있었다. 힘겹게 시신을 뒤집었다. 부패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망한지 몇일 되지 않은 것 같다. 추측하건데 산소가 바닥나고, 밭은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하고 사망한 것 같았다. 그녀가 쓰고 있는 헬멧 안 쪽이 검붉게 피가 말라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시간은 지난 것 같다.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감고 있던 눈과 양쪽 귀, 코,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현재 인류를 멸종시키는 변종폐결핵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것은 확실하다. 미세먼지와 결합된 폐결핵 바이러스.. 변종폐결핵 바이러스는 7일정도 잠복해 있다가 갑자기 심한 기침을 유발시키며 눈과 귀, 코, 입으로 피를 흘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인류는 제대로 된 치료약을 발견할 새도 없이 삽시간에 퍼진 죽음의 쓰나미로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어찌되었든, 또 한 명의 생존자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할 수 밖에 없다.

대재앙 이후 지금까지 10여년을 생존하면서 많은 주검을 보았다. 

나는 항상 거처로 돌아오면 영상일기를 쓰면서 사망자를 기록해둔다. 

내가 본 사망자 수 13,896명에 1명을 또 더하게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오래전에 죽은 자가 아닌 대재앙 이후 생존자들의 사망 숫자이다.    

나는 그녀를 한쪽에 반듯하게 누이고 손을 가지런히 모아주었다. 그리고 그 손에 통조림 하나를 쥐어주고 잠시 기도를 하였다. 그녀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잠시나마 그녀의 것이었던 남은 통조림들을 차에 옮겨 실었다. 

어쨌든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나보다 먼저 죽은 일면식도 없던 그녀를 위해서라도.

시체를 목격하고 난 후에도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생존하면 어찌할까라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내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니깐.

이 영상을 남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아,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파리한 기침은 멈출 수 없었다.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기록을 남겨야 한다.

누군가 생존자가 있다면, 그리고 생존자의 후손이 생긴다면, 우리의 잘 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고해야 한다. 

지난 2010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미세먼지로 인한 문제가 서서히 퇴적되어가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전 지구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2030년대 초반의 일이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지속적인 미세먼지 저감정책을 실시했고, 전 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 개발을 통한 미세먼지 감소를 유도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화석연료를 쓰고,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새로운 지역들이 나타나고,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남미 아마존 지역의 난개발로 인해 맑은 산소의 생산이 감소되면서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는 결국 끊지 못했다. 

10년 이상 지속된 미세먼지와 대기질 악화 등의 문제는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어버린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 대기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비가 내리지 않았고, 공기의 질은 더욱 나빠졌다. 대기는 정체되고, 공기는 순환되지 않아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 지구를 이불처럼 덮어버린 미세먼지구름으로 인한 온실효과가 가중되어 지표상의 평균 온도는 10도이상 높아졌다. 지구는 습도 낮은 사우나 안과 같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지구는 견디지 못하고 2048년 “대재앙”으로 지구상 인구 90%를 몰살시킨 것이다. 

후진국 병이라 불리었던 폐결핵이 미세먼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변종바이러스를 만들어 냈고,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유아, 아동들을 먼저 세상을 등지게 했다. 이후 건강했던 성인들도 죽음의 급행열차에 탄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중세의 흑사병이라는 검은 구름이 지구를 뒤덮었을 때보다 더 맹렬한 속도로 인류를 멸종시켜 나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역시 그들도 죽음의 열차를 타는 시간만 조금 벌었을 뿐 피하지는 못했다. 

대재앙 이후 인류는 멸종이라는 티켓을 예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호텔에 있는 청소기를 찾아내서 매일 돌리고, 각 방마다 있던 이동식 공기청정기를 가지고 와서 풀가동해 왔다. 

또 생존자를 찾으려고 마트에서 가지고 온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지고 SNS를 돌려보았다. 

#생존자 #SOS 등을 검색해 보거나, 신호를 남겨 놓고, 현재까지도 서버가 돌아가는 유튜브 동영상 방송을 일정한 시간에 계속해서 내보냄으로써 생존자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와이파이로 돌아가는 수십 대의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생존신호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최근 몇 달 들어서는 그나마 있던 소식도 끊어졌다. 가장 마지막 신호를 받은 것이 석달 전이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이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외로움이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서로의 체온을 공유할 사람도 없다. 

이 모든 원인을 무분별하게 자원을 써 버리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수질을 오염시킨 인간들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할 권리도 이유도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도 그렇게 자원을 써 버리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수질과 땅을 오염시킨 인간들 중 하나이고, 그에 대한 대가는 모든 인류가 공평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금 늦을뿐,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응분의 대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미래는 유토피아가 되길 바랐던 인류의 소망과는 달리 멸종이라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는 것 뿐이다. 

만약 우리가 대재앙의 첫 전조였던 2019년도 2월과 3월 초의 7일간 연속된 미세먼지 사건을 간과하지 않고 잘 대처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 당시 이웃나라인 중국을 탓하면서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때 제대로 처리하고, 서로 협력해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노력했었더라면, 지금처럼 멸종의 길을 걷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후회만 가질 뿐.     

인류 멸종을 생각하니, 우리 인간들이 멸종시킨 수많은 종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어떤 이들은 인류는 파렴치한 종족이라고 했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파괴하고, 수많은 종을 멸종시키며 종족 보존을 위해 애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자생존...

적자생존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원시시대 가장 최하위에 있던 인류라는 종족이 어느새 모든 종의 상위 포식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지독하고 용렬하고 영리한 존재가 아닌가로 평가하고 싶다.

뭐 지금에 와서 인류가 상위 포식자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비평할 필요는 없다. 영리한 존재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꾀에 자멸하는 길이 선택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그 종족은 지금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의 편리를 위해 무분별하게 자원을 탕진하다가 빚은 결과물로 인해서....

기침이 자꾸 난다.  

처음엔 그 빈도를 세어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한번 기침을 하기 시작하면 멈추기 까지 무척 힘이 들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점점 기침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덕분에 내 삶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곁을 지켜주던 가족들이 한명씩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남겨진 자가 갚아야 할 죗값인 것이다. 

얼른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것만이 내가 대재앙 당시 다른 이들과 함께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죗값을 빨리 변제해 나가는 길인 것이다. 

2000년도 밀레니엄 세대라는 소리를 들으며 태어난 나는 2030년에 결혼을 했다. 

당시에는 대재앙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시기였다.

결혼을 하고, 쌍둥이 딸을 낳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아내와 함께 행복을 느끼던 시절이었기에.... 현실의 달콤함에 빠져 지구가 변해가는 것을 알지 못했던 때였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했던 그 시간 동안에 지구는 서서히 병들어갔고, 그 신호를 우리 인류에게 보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도에도 마찬가지였고, 이후 보름씩, 한 달씩 지속되던 미세먼지의 공습에도 인류는 깨닫지 못하고 2020년대의 10년을 훌쩍 지나오면서 나름 인공비를 만들어 뿌리고, 도시에 미세먼지를 잡기 위해 분수대를 많이 설치하고, 길거리 곳곳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서 때가되면 자동적으로 물을 뿌려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이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아마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금이나 그 당시 사람들이나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인류가 가진 탐욕들이 우선시 되고 미세먼지라는 것을 먼지처럼 하찮게 인지하다보니 점점 해결책은 뒷전으로 미뤄지게 된 것 같다.

지구의 지속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인류에게 마침내 참다못한 지구가 대재앙이라는 전쟁을 선포하였을 때, 나는 아내와 딸아이 둘을 먼저 보내야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낸 남겨진 자의 통렬한 슬픔을 처음으로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라는 배가 사고로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당시 나보다 두 살 정도 위의 어린 자녀들을 수장시키고 남겨진 부모님들의 마음처럼.... 그렇게 먹먹하고, 아프고, 꿈에도 그리게 되고,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미안함, 비통함을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가슴 가득 담을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야 느끼는 이 감정들이 결국 대재앙 당시 죽음을 함께하지 못한 나를 더욱 자책하게 만든 것이다.

지구도 자신이 만든 수많은 종들이, 인간에 의해 멸종되어 갈 때의 비통함을 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구상 어디엔가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중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존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그럴 마음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조금이라도 오래 산다는 것은 너무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대학교에 다닐 때 친구가족에 대한 일화가 더듬듯이 기억난다. 

당시 친구는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었다. 친구 부모님은 항상 기도한다고 한다. 

당신들이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보다 3일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그것이 정녕 안 된다면, 함께 죽게 해 달라고...... 그만큼 장애를 가진 자녀보다 오래 살아간다는 것은 부모로써는 힘든 일이고, 남아 있는 부모가 자녀의 죽음을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가슴에 새길 수 있다.

죽음을 앞두었기 때문에 이런 기억도 반추할 수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운명이라 생각하지만 외로움과 슬픔은 그렇게 나를 조금씩 심연 속으로 내리 누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 자꾸만 눈이 감긴다.

이제 내 목숨이 다하는 것 같다. 

머리 속이 까무룩하다.

죽음의 사신이 검은 장막을 나에게 드리우는 것 같다.

서서히 눈이 감기고, 세상이 검게 보인다.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인 미세먼지..

우리는 그 대가에 대한 응분의 보상으로 멸종으로 갚아주고 있다. 그동안 우리를 보듬어주고, 자신을 해쳐도 묵묵히 받아주었던 지구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죗값을. 

하찮게 여겼던 미세먼지의 역습에 그토록 영민하고 생존적응에 능한 인류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니...

하지만 난 소망한다. 

누군가 나를 찾아오거나, 연락을 준다면, 그에게 부탁하고 싶다.

부디 반드시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우리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루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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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

1인용 소파에 앉은 초로의 남자는 잠이 든 것인지 혹은 사망한 것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세대의 스마트폰이 놓여 있다. 한대는 세워져 초로의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다른 두대의 스마트폰 중 하나의 화면이 밝아진다.

알림음과 함께 알람메시지가 뜬다.

하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띵동. DM이 왔습니다.]

[이곳은 제주도입니다..... 서서히 미세먼지 구름이 걷히고 있습니다. 공기도 조금씩 순환이 되고, 폐결핵바이러스도 잦아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존자입니다... 현재.... 100여명 정도가 살아남았습니다.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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