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글쓰기

미세먼지

거실인지 부엌인지 모를 구분 없는 작은 공간에는 술병이 나뒹군다. 그 옆으로 빈 술병처럼 아버지가 나뒹굴다 잠들기를 반복한다. 엄마는 나이가 지긋해지기 전에, 아니면 저 술병들이 지긋지긋해지기 전에 집을 나갔다. 몸집이 커지는 속도에 맞춰 새 옷을 사줄만 한 사람이 사라졌기에 팔, 다리 길이에 맞는 옷을 갖춰 입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교복을 입기 시작할 때쯤부터 할머니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교복 나눔으로 물려받은 교복은 다림질만 잘해도 꽤 태가 났다. 무엇보다 얼음장 같은 물로 얼룩만 대충 지워낸 길이가 들쭉날쭉한 옷가지 따위를 주워입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할머니-라는 사람-가 가끔 꼬깃꼬깃한 천원 몇장 쥐여주며 이발이라도 해 해 준 덕분에 행색이 나쁘지 않아, 그쯤부터는 친구도 좀 사귀기 시작했다. 아마 사상 최악의 황사가 지나간 이후부터 갑자기 미세먼지가 화두에 떠오를 때쯤이었는데, 중국발 황사에서 나오는 미세먼지가 문제다, 서울형 스모그다 하며 뉴스에서 떠들어대고 미세한 먼지 알갱이까지 잡아주는 고성능 필터를 장착했다는 에어컨까지 쏟아져나왔다. 외부 활동 자제를 권고하던 시기였지만 나와는 상관 없는 얘기였다.

아버지는 술 마시는 행위 이외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돈을 벌러 나가지 않고 할머니 돈으로 술을 사 마셨다. -기초 생활 수급자 국가 보조지원금이라는 이름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전엔 엄마가 벌어오는 돈이었을 테고, 나중엔 내가 구해오는 돈이 되겠지. 돈에 미쳐서 도박을 일삼거나 밖으로 나다니지도 않았다. 나를 때린다거나, 욕을 퍼붓거나, 심지어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방구석에 쌓인 술병들처럼 널브러져 끊임없이 술을 마실 뿐이었다. 학교에 가는 것처럼 교복을 입고 나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길거리를 배회하는 일 역시도 아버지의 알 바가 아니었다. 가끔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학교로 와주곤 했다. 나도 그게 편했다.

 

할머니가 낡은 철문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일단 느 아부지한티는 암시롱 말거레이.”

낡은 철문이 끼익하는 비명을 질렀다. 신발을 벗고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제치며 들어와 이불장 앞에 대충 가방을 내팽개치고 앉았다. 할머니는 곧장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듯했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파리 한 마리가 그 근처를 웽-하더니 이쪽으로 들어와 술상 위에 앉는다. 아버지가 눈을 끔벅하다가 책가방을 슥 쳐다보고는 학교 다녀왔겠지 하고 술잔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생각에 빠졌다.

 

고등학교는 기숙학교에 보내보는 것이 어떠세요..?”

이번엔 그냥 안부 인사만 나누자며 학교로 할머니를 부른 담임이 대뜸 말한다.

조건이 나쁘지 않아요. 출석일만 본인이 조금 신경 쓰면 진학에는 문제 없을 겁니다.”

듣고는 있는건지 평소와 다른 상황이 어색한 건지 할머니는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나는 그런 할머니와 담임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고만 있다.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고 아버님의 상황도 고려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말을 흐리다가 갑자기 쌓여있던 파일을 뒤적거리더니 알 수 없는 서류 뭉치들을 내민다. 입학 지원서, 기숙사 지원서, 보조금 신청서, 또 무슨 지원 사업 설명 안내하는 이름의 서류뭉치들 사이로 ‘-동 학대 피해 지원 안내라고 적힌 글자가 숨어든다. 순간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천천히 찻잔을 들어 차를 음미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날 이후, 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한 웅큼씩 뜯어 집 안 여기저기에 버려두었다. 할머니가 폐지를 묶을 때 쓰던 노끈 같은 걸 팔뚝에 동여매고 돌아다니다 집에 와보면 피가 안 통한 자리에 멍이 조금씩 들어있었다. 팔뚝이나 허벅지 같은 티가 나지 않는 곳에 묶고 며칠을 지냈다. 친구들 도움도 조금씩 받았는데, 담배 빵이나 손톱으로 낸 생채기 같은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만들어 주었다. 한번은 둔기 같은 걸로 살짝 때린다는 것이 너무 아플까 봐 무서워 피하다가 손가락을 부러뜨린 적도 있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집안 살림에 관심이 없어 증거물 위조하기는 수월했다. 치우다가 깨진 술병도 버리지 않고 싱크대 구석에 잘 숨겨두었다. 생리혈이 새서 젖은 이부자리에 옷 몇 가지를 같이 말아서 핏자국을 여러 개로 만들고 돌돌 말아서 이불장에 넣어두었다. 필요할 때 흩어놓으면 될 일이었다.

황산지 미세먼진지가 심해서 당분간은 창문도 잘 열지 못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열심히 친구들을 만나고 열심히 작업을 진행했다. 낮에도 지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적어져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바닥을 걸레질하던 할머니가 마른기침을 뱉는다. 할머니의 기침에서 나이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작은 알갱이들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요 며칠 숨 쉴 때마다 입안이 까슬한 게 왠지 저 알갱이들이 입안에서 목구멍으로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뉴스에서는 몸에 쌓이는 미세먼지는 분해가 안 되고 쌓이기만 한다던데. 나는 몸속에 자리 잡을 모래 언덕을 상상했다. 바람이 불면 모래 먼지가 후-하고. 켁켁. 모래 먼지를 상상하니 먼지가 목구멍을 다시 타고 올라와 나도 마른기침이 나왔다. 걸레질을 끝낸 할머니가 걸레를 빨러 간 사이, 할머니 지나간 자리에 할머니의 돈주머니가 떨어져 있었다. 몰래 꺼내 쓸 생각은 없었지만 얼마나 들었나 궁금함에 지퍼를 여는 순간 할머니가 뛰쳐나와 돈주머니를 낚아챈다. 꼬깃해진 지폐 사이에서 여인의 사진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다시 기침이 나왔다. 나도 몇 개의 알갱이를 토했다.

 

아버지의 일과는 술과 잠뿐이다.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 술을 마시고 다시 잠드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가 잠에서 깨면 술에 취한 채로 다시 술을 마시고 그대로 잠들기를 반복하니 일과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방구석에 널브러진 아버지를 등지고 가짜 증거물을 만드는 작업에 집중한다. 아물지 않도록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긁은 생채기가 따갑다. 쓰읍.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너무 아파서 며칠째 티셔츠는 갈아입지도 못하고 같은 티셔츠 위에 교복만 입었다 벗었다 했다. 아무래도 진물이 난 듯해 반창고라도 붙여야겠다 싶어져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삼키다 뒤로 넘어질 뻔했다.

방구석에서 술에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술 취한 아버지가 순서도 모르게 섞인 서류 뭉치는 깔아뭉갠 채로 기숙학교 입학 서류를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니는 암시롱 마라.”

몇 번 들어도 보지 못한 낯선 목소리로 아버지가 작게 말했다.

느그 할매 와도 암시롱 마라 암시롱.”

아직 붙이지 못한 반창고를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얇은 유리창이 바람에 흔들린다. 미세먼지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창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몸속에 쌓인 모래 먼지에서 폭풍이 인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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