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읽고, 함께 쓰기

'쓸모인류'가 내게 가지는 8줄 짜리 쓸모


 여행삼아 서울에 와있다. 이틀 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카페를 갔다.  잘 읽히는 책이었던건지 오랜만에 읽는 책인데 그 자리에서 절반을 읽었다. 오늘도 카페에 와서 나머지 절반을 방금 다 읽은 참이다. 책도 오랜만인데, 하물며 독후감은; 내가 써야하던 독후감들은 참 혐오대상이었다. 특히 줄거리와 느낀점 3:1정도의 비율은 뇌리에 박힌 치과 냄새와 비슷한 기억이다. 근데 이걸 안지키고 독후감을 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뭔가 재밌겠다고 느껴져서 바로 쓰게됬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쓸모인류'라는 책인데, 공간에서 독서토론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읽게 됐다. 공책을 옆에 펼쳐놓고 인상깊은 구절이나 표현, 깊게 생각해볼만 한 것들을 적으면서 읽었다. 그랬더니 2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내용은 8줄 정도로 정리되었다. 우선 맨 처음 메모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자면


 - 403호, 나는 4층 3번째 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책 내용중에 '빈센트'라는 사람이 집에 이름을 붙이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유독 집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사람인데 그 이유가 집에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뭔가에 이름을 붙이는게 거창한 변화없이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 대충 살지 않는다


 한번 사는 인생, 대충 살지 않는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흔한 자기계발서의 내용이라고 느껴지면서도 내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나는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것 외에 다른것에 에너지를 투자하는것이 굉장히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음악적으로 생산적인 아이디어'에 국한되어있어서, 살림이나 생활 전반적으로 매우 의욕이 없고 게으른 편이다. 나 스스로도 내 인생을 남 인생처럼 살고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이게 쉽게 말하면 대충 살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내가 '대충 살고 싶지 않다'라는 스탠스는 무의식적으로 취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변화하고 싶어하는 나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 정리정돈은 정말 인생을 바꿔주는가?


 책의 내용에서 빈센트는 정리정돈이 인생을 바꿔준다고 말한다. 나는 약간의 논리적 비약을 느꼈다. 이 책을 포함해 대부분 정리정돈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의 포인트는 '정리정돈같은 쉬운것도 못하면 어떻게 더 큰일을 하겠어?' 내지는 '정리정돈을 해서 생긴 시간과 공간을 중요한것에 투자한다'이다. 그럼 결국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앞선 문장에서 '더 큰일'과 '중요한것에 투자'이다. 그럼 정리정돈이 인생을 바꿔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리정돈을 하고 우리가 해야하는 '더 큰일'과 시간,공간을 투자해야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봐야 알 수 있는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굳이 유지하면서 내용을 바꿔 수용하자면, 내게는 '나의 내면을 정리정돈하는 것은 인생을 바꿔준다' 정도가 되겠다. 요새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생각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정리정돈하는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아주아주 느끼고 있다.


 - 음악적 사고 외에는 불필요 하거나 중요치 않다 생각하는 내 태도는 옳은가?

  (이 책은 너무 생활 전반적으로 집중을 요한다. ex:살림)


 앞서 말한듯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사먹던지 대충 떼우는 식에다가, 방은 정말 쓰레기장처럼 느껴졌을때나 한번씩 청소하고...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게 너무 귀찮고 아깝지만 딱히 그럴 시간에 음악적으로 굉장한 것을 하는것도 아니라서 내가 걱정될 때가 있다. 모든것은 게으른 나의 핑계가 아닐까! 울산에 돌아가면 방 청소부터 해야겠다.


 - '오마카세'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나온다. 일본어로 '모두 맡긴다'라는 뜻이며, 보통 주방장이 모든걸 책임지고 내놓는 추천요리를 뜻한다고 한다. 요새 새로운 어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터라 메모를 해뒀다. 그게 다다.


 - 집에 방명록을 쓰는 것


 '빈센트'는 집에 친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방명록을 쓰게 한다는 내용이 있다. 주변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이 일상을 굉장히 신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함께한 시간을 전시하는 느낌이 아닐까. 언젠가 해보고 싶은 시스템이다.


 - 일상에 쫓기는 분주한 아빠는 매사에 너그럽지 못하다.


 평소에 자잘한 것들에도 짜증이 난다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표현이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 아닐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괜히 다른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러고나면 그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내용을 간략하고 일상적인 단어로 잘 표현한것 같아서 더 깊게 와닿았다. 근데 내 생각에 나는 꽤 너그러운 편이다. 다만 그런 나에게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끔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들이 '일상에 쫓기는 분주한' 사람들 이기 때문에 너그럽지 못하구나하고 한번더 너그러워져야 하는걸까? 군대에서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100번 못되게 굴던 선임이 1번 착하게 굴면 그렇게 친해지면서, 100번 착하게 굴던 내가 1번 쓴소리를 하면 썅놈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 이후로는 되는대로 사는것 같긴 한데 그래도 누군가에게 너그럽고 착한 사람이고 싶은건 사실이다.


 - 휩쓸리는 시간


 사람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휩쓸리는 시간'때문 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3월 한달간 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일을 할 때보다 작업량이 적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일을 하던 시간에 작업을 하게 된 게 아니라 더 뒹굴거리고 유튜브를 보고 웹툰을 정주행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쩌면 후에 나의 어떤 행보가 이런 시간들이 허송세월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줄 수 도 있겠지만 끝까지 그러지 못한다면 이런게 '휩쓸리는 시간'이 아닐까. 이런 시간들을 막연하게 잡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휩쓸리는 시간'이란 표현이 막연함에 실체를 부여한 느낌이다. 잘 해낼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책에서 느낀것은 이러했고, 전체적인 책에 대한 얘기를 솔직하게 하자면 참 별로였다. '빈센트'라는 사람을 전형적인 '쓸모인류'로 정의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그와 대조한다. '빈센트'에 대한 작가의 선망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독자를 자기 자신과 일치시키려는 부분이 가끔 튀어나온다. 머릿말을 읽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여타 자기계발서들과는 달라'라는 식의 글이 기대감을 줬는데, '봐! 이렇게 살아야겠지!' 라고 말하는 영락없는 자기 계발서였다. 나는 처음에 간략하게 정리된 내용을 보고 어떤 '쓸모인류'에 대한 소개인줄 알았고, 그 사람의 삶이 궁금했을 뿐인데. 자꾸 첨언하여 '이런 쓸모인류가 있고, 이렇게 되고 싶다'로 마무리 되는 글 구성이 거슬렸다. 어쨌든! 책의 모든 부분에서 끄덕거릴 필요는 없다.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서는 만족스러웠고 내가 책에서 느낀걸 독후감을 통해더 깊게 새겨넣는 기분이다. 앞으론 종종 책을 읽어도 나쁘지 않을것같다. 이렇게 기분좋은 일이라니!


 ps. 여기 카페 꿉꿉한 커피콩냄새가 계속나는데 발냄새같다. 탈출해야지. 8년만의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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