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끄적거림

[끄적] "너의 이런 고민까지 알게되서 기쁘다"

밤 11시에 하는 SBS라디오 '존박의 뮤직하이'를 즐겨듣는다.

요새는 TV보다 라디오가 더 좋다.

(직업상 TV를 많이 보는게 맞는 거 같은데... 점점 아날로그 감성이 짙어져서 큰일이다.)


화요일마다 게스트로 나오는 '이종범 작가'

'닥터 프로스트' 웹툰 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난 라디오에서 처음 알았다.

근데, 이 사람 말을 너무너무너무 잘한다.

무슨 웹툰 작가가 말을 이렇게 잘하지? 했는데, 심리학 전공에 웹툰도 심리에 관련된 웹툰이라고 한다.


심리학 전공이라고 언변이 다 뛰어난 건 아니지만, 무튼 난 이사람의 뛰어난 말솜씨와 유머에 홀리고 말았다.

그래서 라디오를 들으며 필기를 하기에까지 이르렀는데...


최근에 '마음의 하수구'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도중 나에게 꽂힌 '하나의 문장'이 있어 필기한 내용을 정리해보려 한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

만나는 자리에서 마다 남자친구를 욕하는, 그래서 막상 위로하고 같이 욕을 해주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진짜 이것만큼 힘 빠지는 대화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만날 때마다 힘든 얘기만 한다. 듣는 내가 힘들 정도로 인생의 고달픔에 대해 쉴 새 없이 쏟아붓는다.

나만 보면 힘든 얘기만 하는 사람들은 대체 뭐가 문제여서 그러는걸까??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오물들이 쌓이게 된다고 한다.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들, 그런 감정의 잔해들이 나도 모르게 쌓인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만의 '마음의 하수구'를 통해 정기적으로 이것을 배출해줘야 한다.


작가는 이 하수구의 제대로 된 작동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좋은 예시들이 많다. '취미'가 대표적인 것 같다.

운동이나 게임. 아니면 음식을 먹거나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도 이 하수구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기서 최악인 것은 타인을 '마음의 하수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의 오물들을 타인에게 쏟아내어 하수구를 작동하는 것이야 말로 최악이라는 것이다.

일방적인 감정의 배출은 순간 당사자의 마음이 풀릴 수 있으나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작가는 "다른 사람의 하수구가 되지 말아라" 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마음 역시 중요하니, 상대방이 나를 감정받이로 대하는 것이 느껴지면 단호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뒤에 내 심금을 울린 더 멋진 말을 이어한다.

"나에게 2인분의 여유가 있다면, 소중한 누군가에게 하수구가 되는 것도 기쁜 일이다"


2인분의 여유,


상대방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내가 감정받이 혹은 감정쓰레기통의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2인분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들을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혹은 내가 누군가를 감정받이로 대했을 때, 나의 모든 걸 다 수용해줬던 건 상대방이 2인분의 여유가 있어서였을까.

(새삼 내가 일방적으로 감정받이처럼 대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에게 남자친구의 고민을 끝없이 얘기하는 친구도, 인생의 고달픔을 토로하는 선배도 의도치 않게 나를 '마음의 하수구'로 사용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런데 왠지 작가의 저 말을 듣고 나서는 그들의 감정받이가 되는 상황이 꽤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해서 그들의 마음이 정화가 된다면 좋은 일이지. 나에겐 2인분의 여유가 있으니깐'

이런 마음가짐이 생겼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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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런 고민까지 알게되서 기쁘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그 상황에서 나에게 '기쁘다'라고 얘기한 건진 알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한번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상투적인 위로들을 주고받았을 뿐, 진심으로 그 상황에 몰입하지 못했다.(몰입하고 싶지 않았거나) 


'2인분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

그리고 마음이 지친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갈 토로한다면 그대로 받아주고 싶다.

소중한 누군가에게 가끔 '마음의 하수구' 역할을 해주는 것도 꽤 행복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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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jangho10****
    4 Mar 2019
    예전에 이어폰 한쪽씩 나눠서 친구랑 야자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ㅎㅎㅎㅎ 그렇게 재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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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N
    26 Feb 2019
    하수구처럼 차라리 흘러가버리면 오히려 나은데.. 내 마음도 그사람 마음처럼 담긴다는게 문제겠죠. 일방적인 감정받이는 정말 어려워요! 빗자루로 쓸면 쓰레받기가 담아서 같이 청소하는 것 처럼, 위로도 결국 세트로 하는 것 같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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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z
    26 Feb 2019
    닥터 프로스트 재미있어요 어렵지만 ㅎㅎㅎ 전 친구들이 힘들어하거나 고민상담같은 걸 할때면 얘기를 들어주곤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요. 내가 그만큼 그 사람한테 편한 사람이구나 필요한 사람이구나라는게 느껴져서? ㅎㅎ 저 또한 매일 힘들다는 말만 하는 사람들한테는 지치고 내가 힘드니까 소원해지기도 했는데, 덕분에 좀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거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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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이
    26 Feb 2019
    오호! 멋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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