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끄적거림

[에세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비생산적인 1월.

2월 연휴가 워낙 길었던 탓인지, 이제와서야 1월이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다이어리를 넘겨보며, 지난 한달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훑어보니, 정말 한 일이 없다.

대부분 친구들이랑 술 먹은 일, 남자와 만나고 헤어진 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은 노래에 대한 메모...

비생산적인 일들로 가득한 한 달이었다.

1월 1일, 춘천에서 울산으로 오는 날의 감정이 떠오른다.

정말 정말 오기싫었다.

18년 연말 이 세상이 무너질것 같은 이별을 겪고 난 후에 난 정말 울산에는 발도 붙이기 싫었다.

이 모든게 내가 이 도시에 와 있어서 벌어진 일 같아서

'지금 이 상황만 아니었더라도 난 행복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조용한 침묵속에 잠겨있는 내 자취방에 들어가는 일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했다.

그런데 들어가야 했다. 현실은 SNS 친구 차단하기 처럼 간단히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깐.

다행히 나는 생각보다 굳건한 인간이었고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시간을 함께했다.

억지로 잊으려 노력하지도 상황을 바꾸려 애를 쓰지도 않았다.

충실히 살았다. 라고 까지는 못하겠다. 그냥 그 순간을 말 그대로 '살았다'

그렇게, 내 다이어리에 기록된 것 처럼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하루들이 점차 나를 원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상처가 나면 피가 흐르고 딱지가 생기고 어느 순간 보면 다시 새 살이 돋아나는 것 처럼

그냥 별 다른 노력없이 나는 자연스레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설 연휴가 지나고 다시 울산으로 내려올 때, 나는 버스 안에서 1월 1일의 나를 떠올렸다.

참 불쌍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결국 모든건 다 지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참 열심히 아프고 슬퍼했구나.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넌 꼭 무언가 생산적인 걸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나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을 뭔가 한심한 일같이 여겨왔다.

주말 늦은 오후 소파에 가만히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고,

28살이나 먹은 내가 아직까지 어떠한 업적(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는데, 일종의 성과라는 의미)도 쌓지 못했다는 게

죄책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정말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걸 강요한 적은 없었는데.

비생산적인 1월을 보내고 2월에 산다.

간사하게도 요새는 꽤 '살만한 인생이구나' 생각한다.

아무것도 한 게 없어도 괜찮다.

이번 만큼은 어떠한 성과물도 변화도 없더라도 '나 지난 한달 잘 살았다'라고 해주고 싶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지난 달 아프고, 슬프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있어서니깐.

피가 흐르고, 딱지가 생기고 이내 새 살이 돋아내는 시간 동안


나, 참 충실히 내 감정을 받아들이며 잘 살았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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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슈퍼스타절미
    22 Mar 2019
    성과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것도 하나의 성과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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