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o, EUROPE

14. "이제서야 진짜 여행을 온 것 같아." (영국 5일/샤프츠버리)


버스를 타고 샤프츠버리에 돌아왔다.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 이 동네는 레스토랑이 정말 몇 없는데, 이미 유명한 곳은 전 날 다녀와서 선택의 폭이 크지가 않았다. 굳이 인도음식점을 갈 이유도 찾지 못했고, 아직 '그'는 피시앤칩스를 먹어보지 못했다. 몇 군데 기웃거리다가 결국 타운홀 바로 옆에 있는 <MITRE>,  펍*으로 갔다. 비오는 날 어깨에 떨어진 빗방울을 툭툭 쳐내며 펍의 입구에 들어서면 묘한 세월의 냄새가 난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른 저녁식사를 할까 했으나 식사는 6시부터 된다는 말에 맥주부터 한 잔 하기로 했다. (식사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았다.) 비오는 늦가을엔 기네스를, 평상시에는 포스터스를 시키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첫 잔으로 '그'를 위한 기네스와 포스터스를 1 Pint(0.568L)씩 주문했다.  맥주를 기다리며 골드힐이 한 눈에 보인다는 발코니로 향했지만 안개가 자욱한 밤에 바깥을 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폭풍속을 다니느라 둘다 조금 지쳤던지 자리를 잡고는 말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맥주를 받아 한 두 모금을 마시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이 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뒤에 있는 보드게임들. 체스를 접했던 것은 십 수년 전이지만 제대로 해 본 적은 손에 꼽는다. 아주 오래 전 호기심이 생겨 한달 가량 친구에게 배우다가 그 친구와 영영 작별을 하는 바람에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서울에서 '그'와 체스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승부욕이 어마어마한 나는 그만 판을 엎어버렸다. 그렇게 체스와는 두 번째 이별.

여행은 평소의 내가 선택하지 않는 것들을 선택하게 만드는데 세번째 체스게임이 그렇다. 어찌됐건 실로 오랜만에 체스판을 펼쳐서 게임을 하는데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는 바보 같이 퀸을 내줄뻔 하고, 나는 나이트의 잘못된 방향으로 게임을 망칠뻔 했지만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포스터스생맥주를 마시는데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아, 비로소 내가 원했던 여행을 한다.  


6시가 되자 부리나케 메뉴를 가져다 준다. 몇 번의 고민 끝에 피시앤칩스와 고기파이를 주문했다. 그 사이 이미 맥주는 바닥이 났고 라거 맥주 두 잔을 더 주문했다. 펍이 좋은 점은 "직접가서 주문을 할 수 있다." 인데, 내가 원할 때 가서 주문하고는 바로 음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잖아? 얼마나 합리적인지. 맥주를 끊기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좋은 곳.  식사를 하고, 또 한 잔 맥주를 더 마신 후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는 제출할 것이 있다며 먼저 잘 것을 권유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 폭풍우 속 거친 드라이브로 고단한 몸이라 잠이 드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을거다.  물론 맥주 3잔으로 만취이기도 했다.  





어딜가나 거의 비슷한 펍


제발 제자리에! 안내판


목넘김이 너무좋은 기네스와 상쾌한 포스터스. 포스터스샨디를 주문해서 먹으면 술을 즐기지 않아도 맛있게 마실 수 있다. 샨디는 '섞다'의 느낌인데 보통은 7up과 맥주를 황금비율로 섞어준다. 스페인의 클라라처럼. 


'음- 무슨 소스와 먹어야 할까' 피시앤칩스를 먹었는데 생선은 내 팔뚝 만했고 감자는 그보다 더 많았다. 그는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렸다. 행복에 겨운 소리


타운홀은 읍사무소처럼 작은 곳이지만 그래도 2차선 도로가 있을법 한데 1.5차선이다. 읍내로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은 별로 현명한 생각같지 않다던 빌할아버지 말을 듣길 잘했다. 

(아래 위 이미지는 구글맵에서 캡쳐한 것)


맥주를 잔뜩 마시고, 화수분감자를 먹었던 펍




영국6일

샤프츠버리의 숙소 - 스톤헨지 - 샤프츠버리의 숙소 - 솔즈베리 (Parking at City hall, Culture Coffee, TK.maxx, Vinyl shop, open  market) - 길링험(Dorset car rental, Station) - 샤프츠베리의 Town hall - MITRE 펍 - 샤프츠버리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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