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함께 쓰는 연말 정산

박아무개의 우여곡절 연말정산

2018년 연말 정산을 해보자.

올해는 정말 내가 체육대학교 나온걸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달렸던 해이다.


1.올해 총 5번의 해외 여행(일본2, 대만, 사이판, 영국 + 프랑스)을 다녀왔고,


- 해외여행은 이전에 나를 돌이켜보면 나에게 사치였다. 특별한 목적 없이 한번에 그런 큰 금액을 사용하는 그 자체가 나에겐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여행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김작가를 만나고 나서 그렇게 바뀌어 나갔다. 사람은 한번에 변하면 병든다고 하더라. 그래서 조금씩 변하려고 하지만 이미 나는 많이 변해 있는 듯하다. 


일본(오사카, 교토, 대마도) - 멤버들과 함께 오사카와 교토를 다녀왔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나는 방사능 걱정만 없다면 정말 집 드나들듯이, 다니고 싶다. 그리고 김작가와 대마도도 다녀왔다. 스노쿨링 하는 도중에 줄돔이 내 상처를 갉아 먹으려 하는 그 포악한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대만(타이페이) - 타이페이에만 일주일 머물렀다. 빈센트가 초대해주고, 용도씨가 함께 가자고 하여, 그리 넉넉치 못했던 통장으로 작은 도시에 오래 머물렀다. Dusky80 분들과 여행을 했고, 집시재즈를 눈앞에서 너무나 즐겁게 즐겼고, 휴대폰도 잃어 버리며, 정말 많은 이야기가 쌓였던 여행이었다.


사이판 - 가족들과 함께 떠났던 아버지 환갑 기념 여행이었다. 엄마, 아빠, 누나, 매형, 조카1, 조카2, 나 그리고 김작가까지 대가족이 함께 여행을 갔다. 김작가는 운전기사와 여행 가이드로 섭외해서 함께 다녀왔다. 급하게 단독주택을 예약했지만 아주 잘 예약이 되어 풀장에서 놀고 고기 구워 놀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다만 인원이 많다 보니 여행지 선택 하는 게 한정적이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영국(런던, 샤프츠 버리)과 프랑스(파리) - 아시아 권을 벗어나 속 된 말로 '서양'이라는 곳을 내가 간 것은 처음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그 나라는 나에게 환상이 아닌 현실로 만나게 해주었다. 말이 필요 할까. 너무 좋았다. (영국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https://thenewmc.com/folders/44 ) 


2. 처음으로 큰 행사를 기획부터 운영까지 해봤고(이상한 나라의 큰애기)

이상한 나라의 큰애기는 정말 단어로부터 시작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우리는 큰일을 벌렸다. 문화의 거리에 회전목마를 떡하니 세우고, 김작가가 쓴 각본으로 배우들이 길거리와 건물에서 연극을 하였고, 시민들은 연극과 행진 공연에 따라 다니며, 어디서든 느낄 수 없던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었다. 나와 김작가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 휘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3. 두 개의 서비스를 오픈 했고,(뉴미들 온라인 커뮤니티, 센트럴 플랫폼)

온라인 커뮤니티는 2년 정도의 고민해서 만든 결과이다. 울산이라는 한계를 몸소 경험하며, 시장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의 나만의 결론이다. 아직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하나 하나씩 쌓아가서, 꽤 괜찮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센트럴 플랫폼은 중구 관광플랫폼 사업으로 만들어진 (주)슬로워크와 함께 만들어낸 서비스이다. 2018년은 개발하는데, 치중하였고, 2019년에는 운영하는데 치중을 해야 하기에 아직 해야 할일도 많고, 해나가야 할 일도 많다. 걱정은 많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겨낼 거라 확신한다.


4. 전시, 공연, 영상제작 등 총 9개의 외부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강아솔 & 이아립, Dusky80, 강원국 작가, 나 다니엘블레이크 각기 다른 주제로 4개의 행사를 울산 문화의 전당에서 치렀고, 울산 한바퀴를 올해에도 진행했으며, 울산 건축 문화제 메인 영상을 제작하고, 5개 도시 교류전을 전시 기획하였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도시재생을 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5. 그렇게 뉴미들은 2명의 식구가 늘었고,

모든 일을 김작가와 내가 했지만 이제는 둘이서 할 수 있는 범위가 넘어 두 분을 채용하여, 더 질 높고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말로 그나마 회사 다운 회사가 되었기에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동안 수고한 김작가에게 정말 감사함을 전한다.


6. 아버지는 환갑이 되셨고,

그래도 시간은 가나 보다. 나도 30대이며, 아버지는 이제 60대이다. 어머니도 내년이면 환갑이니 아버지 환갑 여행처럼 여행을 함께 가볼까 생각 중이다. 항상 희생을 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이 곧 엄마라는 의무로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내가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7. 결혼 안하냐는 말은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고, 싸웠다.

엄마는 결혼 하는 것이 효라고 한다. 그건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냐라는 이야기를 한다.


8. 김작가와 연애한지 2300일이 지났다

김작가와 나는 이미 7년 째 연애 중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 모든 이들이 결혼하고, 내 친구들 중에서도 결혼 하지 않은 이는 몇 명 없다. 하지만 가끔은 결혼이 연애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일 뿐. 현재도 연애 이상의 마음가짐으로 그녀와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연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더욱 더 멋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나도 가끔 결혼 하고 싶기도 하다. 그 이유가 이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가 아닌 정말 이 사람과 한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세상에 공표하고 싶을 때 그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혼은 아직까지 여성이 불리한 조건이기에 그 조건을 가져 가게 끔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 집에서 먹던 소고기 국을 좋아했다. 소고기 국과 함께 먹는 배추 김치, 무 김치, 우엉 김치, 조기 등 너무나 그 음식들을 좋아해 할머니 집에 자주 가고 싶었고, 등이 탈것 처럼 뜨거웠던 할머니 집이 그리워 그랬을 수도 있다. 정정 했던 할머니는 이제 치매가 있으셔서 큰 아들인 아버지 집에 살게 되셨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남매를 할머니 혼자 꿋꿋이 키워내셨다. 그 6명은 부족하지 않게 자랐으며, 못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할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자라고 나니 각자의 삶도 바쁘다 보니 나의 할머니 그들의 어머니의 부분은 점점 줄어나갔다. 그 모습이 우리 집에서도 보였다. 하지만 그 피해는 우리 어머니가 더 겪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기 싫어 아버지에게 나무란 적도 많았다. 그리고 삼촌에게도 마찬가지로 굴었다. 할머니에겐 미안했지만 나에겐 어머니가 더욱 중요했다. 방관 하던 그들은 나에게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무책임해 보였다. 그리고 몇 년간 머물던 우리 집에서 떠나 요양병원에 머물게 된지 일주일 만에 할머니의 비보 소식을 들었다. 안타까웠지만 그동안 어머니의 노고가 더욱 느껴졌던 부분이고, 그들의 원망이 어쩌면 어머니로 돌아 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보이던 그들의 모습은 아직 잊을 수 없다. 다들 바라진 않았겠지만 몇십년 동안 외로웠던 할머니가 더욱 더 외롭게 보였다. 손자인 나도 못나 보였다.



10. 아직 입에는 잔소리와 툴툴거림을 달고 살고,주변에 좋은 소리 안하고 살지만 기어코 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씩 이뤄가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아직 너무나 부족한 '인간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반성한다.


2018년도 너무나 나름 바쁘고 힘들었지만 2019년도에는 더욱이 바빠져야 하고, 더 날아다니고 싶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댓글(10)